은혼
[타카히지] 타카스기 신스케는 죽었다
- memory -
2017. 7. 5. 00:39
*원작 날조 주의
*신스히지
일이 크게 번져지자 진선조와 카츠라, 카츠라를 따르는 무리가 협동해서 그들의 격노를 진정시키려고 한동안 뛰어다녔다. 그들의 말에 수긍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평소 진선조를 안 좋게 보던 이도 있어 거역하다가 강제 연행됐다. 지구를 떠날 타이밍을 놓쳐 숨어있는 천인들한테 해가 끼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등 에도의 경찰 진선조의 할 일이 늘어나고 그들을 '천인의 개' 라며 죽이려고 하는 양이지사가 늘어나려고 해 카츠라는 그들을 설득하느라 애먹었다.
사람들을 진정시키면 끝일 줄 알았다. 진정시킨 후 다시 새로운 쇼군을 뽑으면 끝일 줄 알았다. 정신없어서 그들은 잠시 잊고 있었다. 양이지사 덕분에 천인을 몰아냈다고 하지만 그들은 막부에 위협을 가한 엄연히 대역죄인들이다. 따라서 그들을 심판하고 처벌 해야했다. 카츠라는 그리 큰 위협을 가하지 않고 그동안 양이지사들을 진정시키려고 애쓴 점을 인정하여 처벌을 면했다.(순순히 잡힐 것 같지도 않지만.) 하지만 타카스기는 달랐다.
타카스기는 과격파 양이지사다. 그의 막부에 대한 테러와 복수가 광범위하여 막부와 진선조 뿐만 아니라 그들과 상관없는 에도 시민들까지 휘말려서 크게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우주해적 하루사메와 손잡기까지. 함께 물리쳐준 공을 인장하며 죄를 줄여서 처벌을 약하게 하게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동안 그가 저지른 죄가 너무나도 크다. 형벌을 어떻게 할지 정해질 때까지 그는 구금됐다.
"그 녀석 사형 확정이라던데요."
구금 기간이 길어지자 히지카타가 "무슨 일 터뜨릴지도 모를 위험한 범죄자를 언제까지 가둘 셈이야. 저러다가 탈출하면 개고생이잖아." 라고 투덜거렸다. 그 말에 오키타가 사형을 무슨 봉사시간 65시간 채우라는 듯한 가벼운 형벌처럼 말하자 아, 그러냐 하고 대충 넘어가는 히지카타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사형!? 히지카타의 황당한 외침에 오키타가 다시 히지카타한테 못 박았다. 네, 그 자식 사형.
"해결사 녀석이랑 카츠라놈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을텐데?"
"공식적으로 죽었다고만 발표하고 죽이지 않고 풀어주기로 결정 났습니다. 히지카타씨 말대로 그동안 형씨가 "저 녀석의 목을 벨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라며 반대했잖아요? 만약 죽이면 남은 귀병대 일당이랑 싸워야 하고 우리한테 악감정이 남은 양이지사들이 이걸 빌미로 공격할지도 모를 일이라 이렇게 됐어요."
"...? 어이, 소고. 앞 뒤가 안 맞잖아."
"귀병대가 그 부분은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 사실은 우리와 귀병대만 알고 있는 극비고, 우릴 처리하려는 녀석들을 귀병대가 처리한다고? 녀석들이 아쉬울 게 뭐가 있다고 저러나, 오히려 타카스기 녀석만 빼내고 도망갈 것 같은데. 히지카타가 찝찝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오키타가 그가 더욱 찝찝할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사형을 집행하게 될 사람은 히지카타씨로 결정 났죠."
"...뭐?"
*
"뭐, 이런 어이 없는..."
이토 카모타로. 타카스기가 꼬드겨서 내분 일으킨 거 기억나죠? 그거에 관해서 타카스기 녀석이랑 할 말 많지 않습니까? 오키타의 이 말까지는 히지카타가 수긍했다. 하지만 다음 말에서 울컥했다. 그 자식 히지카타 네 녀석이랑 비슷하니까 비슷한 녀석이 맡기 최고 아니냐, 요 녀석아. 이토에 관해서 한 방 먹은 것도 기분 나쁘건만 자신과 비슷하단 소리에 더 기분 나빠진 상태로 히지카타는 쾌쾌한 냄새가 나는 감옥으로 향했다.
그 녀석 사형 집행이 되면 실제로 죽지 않았지만 사회에서 죽은 자로 처리되는 거라 안 들키려면 우주에서 에도로 몇 년간 못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 일을 형씨나 카츠라한테 맡길까 했더만 타카스기가 히지카타씨를 원하니 마지막 소원은 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키타의 말을 기억에서 되새기며 히지카타는 의문에 잠겼다. 왜? 타카스기가 직접 나서는 일이 없어 히지카타는 타카스기한테 넘어간 적만 줄곧 상대했다.
하지만 혼자 넘겨짚는 것보다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낫겠지. 히지카타는 타카스기가 있는 철창 앞에 섰다. 잠든 건지, 자는 척인지 타카스기는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양이지사 4명하고 있을 때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 봤을 때 긴토키와 애처럼 싸웠던 귀병대 총독이 지금은 진지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제 친우들한테만 보이는 본인의 편한 모습이었는지.
"어이."
"막부의 개답게 기다릴 것이지."
기껏 왔건만 만나자마자 시비냐? 히지카타는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뭐, 어쩌라고. 그에 지지 않게 타카스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마주 응했다. 타카스기가 원해서 히지카타가 왔건만 이 상황은 히지카타가 타카스기의 시간을 방해한 것만 같았다. 어쩐지 껄끄러워 보이는 타카스기의 분위기에 히지카타는 소고가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거짓말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용건이 뭐냐?"
"불."
이 자식 무슨 꿍꿍이 있는 거 아니겠지? 히지카타는 주머니 속에서 라이터를 꺼내 쥐고는 철창 사이로 팔을 뻗자 타카스기가 순순히 팔을 뻗어 히지카타의 라이터만 가져갔다. 자신의 곰방대에 불을 붙이고는 얌전히 준 히지카타의 호의와는 반대로 타카스기는 히지카타한테 라이터를 집어던졌다. 얌전히 불 붙이고는 갑자기 돌변하는 타카스기 태도에 히지카타는 엉겁결에 라이터를 잡아냈다.
"얼굴에 맞았으면 좋았으련만."
"지금 나랑 싸우자는..."
"네 녀석도 피어라."
정말 속을 알 수가 없다. 안 그래도 타카스기와 단둘이 있자니 답답한 마음에 히지카타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특유의 향과 입안에서 맛이 감돌아 아까보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불쾌함이 사라질 때까지 타카스기는 히지카타한테 말 한마디도 안 걸었다. 히지카타는 다시 타카스기를 살폈다. 억지로 끌려오지 않고 스스로 끌려왔다고 들었지만 타카스기를 구속하는 장치가 하나도 없었다. 고문한 흔적 역시 없다.
콘도씨,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전에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녀석을 가두기만 하고 방치라니. 콘도의 대처에 히지카타는 한숨 대신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아무런 대화 없이 담배만 피자 어색한 공기가 흘렸다. 타카스기가 먼저 곰방대를 뒤집어 대충 몇 번 털고는 제 품에 집어넣었다. 타카스기의 말에 곧 히지카타도 담배를 뱉어냈다.
"좋아하는 녀석 있냐?"
"쿨럭 -!!"
히지카타의 과한 반응에 타카스기가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뱉어내면서 동시에 침도 튀겨서 더럽다는 경멸도 함께. 저 자식이 본인이 자처해서 왔으면 이제 미쳐버렸나? 당황하긴 했지만 알려 줄 이유가 없고 말하기 싫은 기억이라 얼버무리려고 할 때 타카스기는 저가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난 있어."
"허?"
말 터놓을 상대가 없다고 적인 자신한테 속마음을 터는 건가? 얼마나 답답하면 혹은 정말 미쳤다는 생각이 히지카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시답잖은 이야기일 거다. 그리 생각하며 타카스기를 바라보니 히지카타를 보지 않고 벽만 바라보던 타카스기의 시선이 히지카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아까의 앉은 자세도 아닌 일어난 자세로.
"나와 다른 주제에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많아. 내가 경멸하는 상대방이라 더 기분 나빠."
타카스기가 철장 앞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마치 선택의 기준에서 반대를 택한 내 모습 같기도 해. 그래서 오묘해."
다시 한 발.
"그런 주제에 상당히 약해빠졌어. 실력이던, 정신이던. 날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라 죽이려고 했건만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안 죽고."
한 발.
"하지만 그래도 약한 건 변함없어."
철장 가까이 온 타카스기가 철창 사이로 팔을 뻗어 히지카타의 멱살을 낚아챘다. 그대로 당기는 힘에 히지카타는 철장에 부딪쳤다. 철장에 박치기 한 고통에 화를 내기도 전에 눈앞의 타카스기 눈과 마주쳤다. 슬픔, 분노, 후회 무언가의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녹안에 히지카타가 당황스레 쳐다보자 타카스기는 히지카타의 멱살을 잡은 손을 풀었다.
"...막부가 멍청한 짓을 하면 다시 오겠어. 그러니 강해지는 게 좋을 거야."
"이번에는 네가 스스로 들어왔지만 다음엔 내가 잡을 테니 나야말로."
"말은 잘하는군. 바퀴벌레 주제에."
아까는 막부의 개라더니 이젠 바퀴벌레냐. 타카스기와의 말싸움에 질려 히지카타는 포기하기로 했다. 분하지만 실력과 전술에서 그보다 밀린다. 그걸로 딴죽 걸면 할 말이 없다.
"에도나 더럽힐 것이지, 내 머리까지 침투하고 더러운 놈."
"어이. 너 점점 의미 모를 소리만 하거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계속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이미 말했다. 멍청한 막부의 개. 할 말 끝났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타카스기는 제 손으로 철장의 자물쇠를 쉽게 따내고 열었다. 열쇠로 문 열고 나오는 타카스기 모습에 히지카타는 그럴 줄 알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어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가짜 사형식이니 타카스기의 목 대신에 가짜 유골에 타카스기의 나비 무늬가 있는 유카타를 입히고 증거로 쓸 생각이다.
타카스기 녀석이 죽었다고 발표 한 지 일주일 지났다. 새로운 쇼군이 오르고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갔다. 천인들한테 구박받는 이는 이제 없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오랜만의 여유를 즐기며 히지카타는 오키타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녔다. 천인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평화로운 일상에 그동안의 일들이 꿈만 같았다. 히지카타는 제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켜려고 했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
벌써 다 떨어졌나. 라이터를 확인하려고 본 히지카타는 글씨가 새겨진 것을 보고 갸웃거렸다.
'애증'
내가 이것을 언제 썼더라? 라이터를 혼자 쓰고 술 주정으로 라이터에 글씨를 새기지 않는다. 최근에 빌려준 녀석이 있다면... 문득 타카스기가 전에 자신한테 한 말들이 떠올랐다. 약해빠졌다고 욕을 퍼붓던 녀석. 그 욕을 하기 전 좋아하는 녀석이 있다고. 저를 놀리나 싶어서 무시했건만...
"과격파 테러리스트 아니랄까봐."
고백 한 번 더럽게 거창하군. 히지카타는 새로 사 둔 라이터로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피웠다. 막부가 멍청한 짓을 하면 온 다라. 이제 그럴 일 없을 듯싶은데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떨지. 그동안 녀석한테 당한 수모 때문에 편하게 대하기가 힘들지만 이 평화로운 날이 지속된다면 어쩌면... 나도 녀석한테 미운 정이 들었나보다.
"히지카타씨, 뭘 그리 즐거워합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신스히지
일이 크게 번져지자 진선조와 카츠라, 카츠라를 따르는 무리가 협동해서 그들의 격노를 진정시키려고 한동안 뛰어다녔다. 그들의 말에 수긍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평소 진선조를 안 좋게 보던 이도 있어 거역하다가 강제 연행됐다. 지구를 떠날 타이밍을 놓쳐 숨어있는 천인들한테 해가 끼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등 에도의 경찰 진선조의 할 일이 늘어나고 그들을 '천인의 개' 라며 죽이려고 하는 양이지사가 늘어나려고 해 카츠라는 그들을 설득하느라 애먹었다.
사람들을 진정시키면 끝일 줄 알았다. 진정시킨 후 다시 새로운 쇼군을 뽑으면 끝일 줄 알았다. 정신없어서 그들은 잠시 잊고 있었다. 양이지사 덕분에 천인을 몰아냈다고 하지만 그들은 막부에 위협을 가한 엄연히 대역죄인들이다. 따라서 그들을 심판하고 처벌 해야했다. 카츠라는 그리 큰 위협을 가하지 않고 그동안 양이지사들을 진정시키려고 애쓴 점을 인정하여 처벌을 면했다.(순순히 잡힐 것 같지도 않지만.) 하지만 타카스기는 달랐다.
타카스기는 과격파 양이지사다. 그의 막부에 대한 테러와 복수가 광범위하여 막부와 진선조 뿐만 아니라 그들과 상관없는 에도 시민들까지 휘말려서 크게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우주해적 하루사메와 손잡기까지. 함께 물리쳐준 공을 인장하며 죄를 줄여서 처벌을 약하게 하게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동안 그가 저지른 죄가 너무나도 크다. 형벌을 어떻게 할지 정해질 때까지 그는 구금됐다.
"그 녀석 사형 확정이라던데요."
구금 기간이 길어지자 히지카타가 "무슨 일 터뜨릴지도 모를 위험한 범죄자를 언제까지 가둘 셈이야. 저러다가 탈출하면 개고생이잖아." 라고 투덜거렸다. 그 말에 오키타가 사형을 무슨 봉사시간 65시간 채우라는 듯한 가벼운 형벌처럼 말하자 아, 그러냐 하고 대충 넘어가는 히지카타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사형!? 히지카타의 황당한 외침에 오키타가 다시 히지카타한테 못 박았다. 네, 그 자식 사형.
"해결사 녀석이랑 카츠라놈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을텐데?"
"공식적으로 죽었다고만 발표하고 죽이지 않고 풀어주기로 결정 났습니다. 히지카타씨 말대로 그동안 형씨가 "저 녀석의 목을 벨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라며 반대했잖아요? 만약 죽이면 남은 귀병대 일당이랑 싸워야 하고 우리한테 악감정이 남은 양이지사들이 이걸 빌미로 공격할지도 모를 일이라 이렇게 됐어요."
"...? 어이, 소고. 앞 뒤가 안 맞잖아."
"귀병대가 그 부분은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 사실은 우리와 귀병대만 알고 있는 극비고, 우릴 처리하려는 녀석들을 귀병대가 처리한다고? 녀석들이 아쉬울 게 뭐가 있다고 저러나, 오히려 타카스기 녀석만 빼내고 도망갈 것 같은데. 히지카타가 찝찝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오키타가 그가 더욱 찝찝할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사형을 집행하게 될 사람은 히지카타씨로 결정 났죠."
"...뭐?"
*
"뭐, 이런 어이 없는..."
이토 카모타로. 타카스기가 꼬드겨서 내분 일으킨 거 기억나죠? 그거에 관해서 타카스기 녀석이랑 할 말 많지 않습니까? 오키타의 이 말까지는 히지카타가 수긍했다. 하지만 다음 말에서 울컥했다. 그 자식 히지카타 네 녀석이랑 비슷하니까 비슷한 녀석이 맡기 최고 아니냐, 요 녀석아. 이토에 관해서 한 방 먹은 것도 기분 나쁘건만 자신과 비슷하단 소리에 더 기분 나빠진 상태로 히지카타는 쾌쾌한 냄새가 나는 감옥으로 향했다.
그 녀석 사형 집행이 되면 실제로 죽지 않았지만 사회에서 죽은 자로 처리되는 거라 안 들키려면 우주에서 에도로 몇 년간 못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 일을 형씨나 카츠라한테 맡길까 했더만 타카스기가 히지카타씨를 원하니 마지막 소원은 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키타의 말을 기억에서 되새기며 히지카타는 의문에 잠겼다. 왜? 타카스기가 직접 나서는 일이 없어 히지카타는 타카스기한테 넘어간 적만 줄곧 상대했다.
하지만 혼자 넘겨짚는 것보다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낫겠지. 히지카타는 타카스기가 있는 철창 앞에 섰다. 잠든 건지, 자는 척인지 타카스기는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양이지사 4명하고 있을 때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 봤을 때 긴토키와 애처럼 싸웠던 귀병대 총독이 지금은 진지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제 친우들한테만 보이는 본인의 편한 모습이었는지.
"어이."
"막부의 개답게 기다릴 것이지."
기껏 왔건만 만나자마자 시비냐? 히지카타는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뭐, 어쩌라고. 그에 지지 않게 타카스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마주 응했다. 타카스기가 원해서 히지카타가 왔건만 이 상황은 히지카타가 타카스기의 시간을 방해한 것만 같았다. 어쩐지 껄끄러워 보이는 타카스기의 분위기에 히지카타는 소고가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거짓말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용건이 뭐냐?"
"불."
이 자식 무슨 꿍꿍이 있는 거 아니겠지? 히지카타는 주머니 속에서 라이터를 꺼내 쥐고는 철창 사이로 팔을 뻗자 타카스기가 순순히 팔을 뻗어 히지카타의 라이터만 가져갔다. 자신의 곰방대에 불을 붙이고는 얌전히 준 히지카타의 호의와는 반대로 타카스기는 히지카타한테 라이터를 집어던졌다. 얌전히 불 붙이고는 갑자기 돌변하는 타카스기 태도에 히지카타는 엉겁결에 라이터를 잡아냈다.
"얼굴에 맞았으면 좋았으련만."
"지금 나랑 싸우자는..."
"네 녀석도 피어라."
정말 속을 알 수가 없다. 안 그래도 타카스기와 단둘이 있자니 답답한 마음에 히지카타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특유의 향과 입안에서 맛이 감돌아 아까보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불쾌함이 사라질 때까지 타카스기는 히지카타한테 말 한마디도 안 걸었다. 히지카타는 다시 타카스기를 살폈다. 억지로 끌려오지 않고 스스로 끌려왔다고 들었지만 타카스기를 구속하는 장치가 하나도 없었다. 고문한 흔적 역시 없다.
콘도씨,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전에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녀석을 가두기만 하고 방치라니. 콘도의 대처에 히지카타는 한숨 대신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아무런 대화 없이 담배만 피자 어색한 공기가 흘렸다. 타카스기가 먼저 곰방대를 뒤집어 대충 몇 번 털고는 제 품에 집어넣었다. 타카스기의 말에 곧 히지카타도 담배를 뱉어냈다.
"좋아하는 녀석 있냐?"
"쿨럭 -!!"
히지카타의 과한 반응에 타카스기가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뱉어내면서 동시에 침도 튀겨서 더럽다는 경멸도 함께. 저 자식이 본인이 자처해서 왔으면 이제 미쳐버렸나? 당황하긴 했지만 알려 줄 이유가 없고 말하기 싫은 기억이라 얼버무리려고 할 때 타카스기는 저가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난 있어."
"허?"
말 터놓을 상대가 없다고 적인 자신한테 속마음을 터는 건가? 얼마나 답답하면 혹은 정말 미쳤다는 생각이 히지카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시답잖은 이야기일 거다. 그리 생각하며 타카스기를 바라보니 히지카타를 보지 않고 벽만 바라보던 타카스기의 시선이 히지카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아까의 앉은 자세도 아닌 일어난 자세로.
"나와 다른 주제에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많아. 내가 경멸하는 상대방이라 더 기분 나빠."
타카스기가 철장 앞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마치 선택의 기준에서 반대를 택한 내 모습 같기도 해. 그래서 오묘해."
다시 한 발.
"그런 주제에 상당히 약해빠졌어. 실력이던, 정신이던. 날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라 죽이려고 했건만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안 죽고."
한 발.
"하지만 그래도 약한 건 변함없어."
철장 가까이 온 타카스기가 철창 사이로 팔을 뻗어 히지카타의 멱살을 낚아챘다. 그대로 당기는 힘에 히지카타는 철장에 부딪쳤다. 철장에 박치기 한 고통에 화를 내기도 전에 눈앞의 타카스기 눈과 마주쳤다. 슬픔, 분노, 후회 무언가의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녹안에 히지카타가 당황스레 쳐다보자 타카스기는 히지카타의 멱살을 잡은 손을 풀었다.
"...막부가 멍청한 짓을 하면 다시 오겠어. 그러니 강해지는 게 좋을 거야."
"이번에는 네가 스스로 들어왔지만 다음엔 내가 잡을 테니 나야말로."
"말은 잘하는군. 바퀴벌레 주제에."
아까는 막부의 개라더니 이젠 바퀴벌레냐. 타카스기와의 말싸움에 질려 히지카타는 포기하기로 했다. 분하지만 실력과 전술에서 그보다 밀린다. 그걸로 딴죽 걸면 할 말이 없다.
"에도나 더럽힐 것이지, 내 머리까지 침투하고 더러운 놈."
"어이. 너 점점 의미 모를 소리만 하거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계속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이미 말했다. 멍청한 막부의 개. 할 말 끝났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타카스기는 제 손으로 철장의 자물쇠를 쉽게 따내고 열었다. 열쇠로 문 열고 나오는 타카스기 모습에 히지카타는 그럴 줄 알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어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가짜 사형식이니 타카스기의 목 대신에 가짜 유골에 타카스기의 나비 무늬가 있는 유카타를 입히고 증거로 쓸 생각이다.
타카스기 녀석이 죽었다고 발표 한 지 일주일 지났다. 새로운 쇼군이 오르고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갔다. 천인들한테 구박받는 이는 이제 없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오랜만의 여유를 즐기며 히지카타는 오키타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녔다. 천인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평화로운 일상에 그동안의 일들이 꿈만 같았다. 히지카타는 제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켜려고 했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
벌써 다 떨어졌나. 라이터를 확인하려고 본 히지카타는 글씨가 새겨진 것을 보고 갸웃거렸다.
'애증'
내가 이것을 언제 썼더라? 라이터를 혼자 쓰고 술 주정으로 라이터에 글씨를 새기지 않는다. 최근에 빌려준 녀석이 있다면... 문득 타카스기가 전에 자신한테 한 말들이 떠올랐다. 약해빠졌다고 욕을 퍼붓던 녀석. 그 욕을 하기 전 좋아하는 녀석이 있다고. 저를 놀리나 싶어서 무시했건만...
"과격파 테러리스트 아니랄까봐."
고백 한 번 더럽게 거창하군. 히지카타는 새로 사 둔 라이터로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피웠다. 막부가 멍청한 짓을 하면 온 다라. 이제 그럴 일 없을 듯싶은데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떨지. 그동안 녀석한테 당한 수모 때문에 편하게 대하기가 힘들지만 이 평화로운 날이 지속된다면 어쩌면... 나도 녀석한테 미운 정이 들었나보다.
"히지카타씨, 뭘 그리 즐거워합니까?"
"아무것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