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긴히지/히지긴] 졸업

- memory - 2017. 9. 11. 02:06
※은혼 3z - 긴파치와 학생 히지카타
※긴파치가 히지카타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단편 모음집
※과거, 현재 뒤섞임 주의

"빈 둥지 증후군이 이런 느낌일까."


긴타마 고등학교의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떠났다. 졸업식의 여운 때문일까. 시끌벅적했던 강당이 학생들과 선생님들, 부모가 나가니 텅 비어서 씁쓸하게 느껴졌다. 만남과 이별을 함께 하는 곳. 긴파치는 그곳 한가운데에서 과거를 되짚었다.

강당에서 선생님들 소개로 나가서 학생들한테 인사한 후 반 배정을 받았다. 자신의 반 아이들이 누굴까. 긴파치는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는데 그중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에 훤칠한 외모, 그리고 큰 키. 명찰에 "히지카타 토시로 "라고  적혀있었다. 명찰 안 한 녀석들이 많은데 첫날부터 힘줘서 입고 오고 딱 봐도 모범생이구먼.

긴파치는 겉으로 티 안 내며 속으로 내심 기뻐했다. 반장 투표할 필요가 없다. 저 "히지카타 토시로 "가 적격이었다. 무엇보다 사춘기 때라 모범생은 보기 힘든데 모범생이 자신의 반이라니 첫날부터 운이 좋다. 물론 첫인상만으로 알 수 없으니 눈 여겨보기로 했다.



*



운동장으로 나왔다. 교실에서의 추억이 많으니 바깥부터 한 바퀴 돌고 안에 들어갈 생각이다. 히지카타는 매일 아침 꾸준히 교문으로 들어오는데 지각할 때도 교문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지각한 녀석들은 교문에서 지키는 선도부원과 선생님의 눈을 피해 교문에서 떨어진 곳에서 담을 넘는다는데 너무 쓸데없이 솔직하고 정직하달까. 보기 드문 학생이라 마음에 들지만 담 넘는 것도 지나고 나면 추억인데 말이지.


"히지카타군, 선생님이 눈감아줄 테니 담 넘어 볼 생각 없어?"


긴파치가 앞에서 헉헉거리며 힘겹게 뛰어가는 히지카타 옆으로 뛰어가서 말을 걸자 히지카타가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담임 선생님임을 확인하고 히지카타의 발걸음이 멈췄다. 긴파치가 늦게 오니 긴파치가 오기 전까지 들어가면 지각 처리가 안 되는데 바로 그 옆에 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응? 죄 지은 게 아닌데 뭐가?"


긴파치의 말에 허리를 숙였던 히지카타가 '에"라는 어벙한 소리와 함께 허리를 폈다. 달리느라 숨이 차서 붉어진 얼굴, 뛰어오느라 흐트러진 머리. 교실에서 보던 단정한 모습과는 반대라 색다른 모습에 긴파치의 호감도가 올라갔다. 빈틈 없는 녀석이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이야.


"이런 것들도 다 추억이야. 지각하기, 담 넘기."


긴파치가 옆에서 담 넘는 남학생들을 힐끗였다. 긴파치와 눈 마주치자 쥐가 고양이한테 쫓기는 것처럼 뛰어내리고는 학교 안으로 도망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잡을 생각이 없던 긴파치는 귀를 후볐다. 보통 이럴 때 잡는데 보고도 무시하는 긴파치의 모습에 히지카타는 떨떠름해졌다.


"벌받고 나면 수업 듣기 힘드니까 나중에 교실에서 보자."
"선생님!?"
"1교시는 내 수업이니까."


내 시간에 조는 모습 보이면 혼낸다, 요 녀석아. 다소 황당한 이유로 담 넘는 걸 권유하며 교칙 무시하라는 긴파치의 말에 히지카타는 긴파치의 뒷모습을 꼼짝도 안 하고 우두커니 바라봤다. 후에 히지카타가 이걸 말하니 도망쳤던 아이들은 잡혀서 복도에 벌 받았다고 한다.



*



긴파치의 빼먹지 않는 일과 중 하나가 운동장에는 부활동으로 야구를 하는 히지카타의 모습을 교무실의 창문으로 내려다보길 좋아했다. 잘생긴 얼굴이 알려져서 그늘막에는 또래의 예쁘장한 여자 학생들이 히지카타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했다. 인기 많은 녀석은 피곤하겠구만. 긴파치가 사탕을 우물거리며 지켜보는 시선을 눈치 챈 건지 투수를 바라보던 히지카타가 고개를 돌려 교무실 창문을 바라봤다.


"엇..."


이때 인사해야 하는 건가, 부활동에 집중해야 하는 건가? 히지카타가 허둥일 때 투수가 공을 던졌다. 아, 내가 방해했나? 히지카타가 배트를 못 휘두르고 그대로 공이 포수가 잡는 걸 보며 긴파치는 머쓱해서 자리를 피했다. 피한 지 얼마 안 가 다시 되돌아왔지만 말이다


"긴파치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 !"


긴파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큰 소리로 인사하는 히지카타를 보고 긴파치는 놀라서 사탕을 뱉어버리고 다시 숨었다. 의식하고 있었나? 숨어서 다시 바라보자 아까와는 다르게 홈런을 치는 히지카타가 보였다. 환호성이 터지면서 히지카타는 가볍게 뛰고 멈추어 다시 긴파치를 바라봤다. 칭찬을 바라는 눈이기에 긴파치는 엄지를 치켜들자 히지카타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들 키우는 느낌이고만..."


그리 투덜거렸지만 긴파치는 방과 후 부활동하는 히지카타를 더욱 눈여겨보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히지카타가 자신을 의식하고, 히지카타가 잘할 때마다 손으로 사인을 보내며 칭찬해주었다. 그 다음 날이 돼서 아무도 없는 복도에 만나면 히지카타를 직접 칭찬해주기도 했다. 편애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피곤해지니까 말이다.



*



"선생님은 저를 좋아하세요?"


편애하는 게 너무 티가 났나. 다른 반의 선생님 부탁으로 긴파치한테 심부름을 전해주러 교무실에 왔다가 같이 복도로 하교할 때 히지카타가 물었다. 그냥 물어본거라고 보기에는 히지카타의 입술이 귀엽게 오물거렸다. 입술에 뽀뽀하고 싶다. 긴파치는 제 욕구를 누르면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히지카타군을 싫어하는 선생님은 없겠지.  예의 바르고 성실하고..."
"그 뜻이 아닌데..."


긴파치의 말을 자르기 뭐한지 히지카타가 작게 중얼거렸다. 수줍어하는 건가? 무슨 뜻으로 물어본 지 알고 있으나 긴파치는 애써 외면했다. 선생님 입장에서 학생을 진심으로 좋아한단 소릴 하면 잡혀갈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미성년자한테 관심 없습니다~"
"그 뜻은 성인 되면 생각한단 뜻이죠?"
"무,무슨 뜻일까나."


이 무시할 수 없는 엘리트 같으니. 정곡을 찔러 변명하고 싶어 하는 긴파치는 말을 더듬거리며 부정했다. 반대로 주눅 들고 수줍어했던 히지카타의 표정은 희망이 찬 얼굴이다. 어, 어라? 애 나를 선생님으로 따른 게 아니었어!?긴파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히, 히지카타군? 히지카타군은 학생이고, 나는..."
"1년 지나면 성인입니다."
"히지카타군은 젊지만 난 늙..."
"인생 경험 많아서 도움 많이 받겠네요."
"동경을 사랑으로 착각한 거 아냐!?"
"동경 할 게..."


...왜 이건 받아치지 못 하는 건데!? 동경할 게 없단 뜻이냐, 정말 착각한 거냐!? 말문이 막힌 히지카타를 보며 긴파치는 기뻐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희비가 겹쳤다.


"그럼 확인해도 돼요?"
"어,엉? 뭘?"
"동경인지, 사랑인지."


뭘 어떻게 확인한다는 거야? 만약 어느 한 쪽으로 나오면 난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슨 반응을 해야 하는 거고? 떨떠름하면서도 긴파치는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히지카타는 잠시 긴파치를 망설이듯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표정을 굳히고는...


"....내일 봬요, 선생님!"
"뭐, 뭐..."


한순간이었다. 히지카타가 긴파치의 타이를 잡아당겨 끌고는 제 입술로 긴파치의 입술을 꾹 눌러왔다. 클로즈업 된 히지카타의 감은 눈과 말랑한 입술의 촉감에 긴파치의 사고 회로가 정지됐다. 사고회로가 돌아오려고 하니 히지카타는 이미 저 멀리 달아난 뒤였다.



*



복도에서는 저 기억이 가장 강렬했지, 암. 복도를 거닐며 긴파치는 히지카타의 입술 박치기를 떠올리며 키득였다. 복도에서의 키스를 반 근처였지? 긴파치는 졸업해서 이제 텅 비어버린 교실로 들어가 교탁에 섰다. 그 일이 있던 후 긴파치는 히지카타를 마주보기 어려워했다. 히지카타는 하루종일 고개를 숙이다가 목이 아파서 들면 긴파치와 눈을 마주치면 다시 숙였다.

당한 건 나인데 왜 저 녀석이 더 부끄러워하나? 히지카타의 반응에 처음에 마냥 부끄러워 했돈 긴파치는 무덤덤해지다 못 해서 역으로 놀렸다. 수업 중에 히지카타를 빤히 바라보면서 수업하거나 질문을 히지카타한테만 시킨다던가 등. 이 점 때문에 히지카타가 긴파치한테 (나쁘게) 찍혔다, 긴파치의 도s끼가 눈 떴다느니 말이 많았다.

긴파치의 놀림에 적응된 건지 히지카타도 제대로 맞섰지만 말이다. 수업을 핑계로 긴파치가 밑줄 치라는 말할 때만 제외하고 행동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매의 눈으로 봤다. 바뀐 히지카타의 반응에 다시 긴파치는 당황스러웠지만 사랑하는 제자의 시선이 향해서 티 내지 않았지만 기뻐했다.

서로 사귀자는 말은 안 했지만 수업 때 서로 눈 마주치면 웃는 얼굴을 했으니 이때가 사귀기 시작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사제 관계, 보호자와 보호받는 자의 입장이니 서로 먼저 고백하지 않았다. 긴파치와 히지카타는 기다렸다. 긴파치는 히지카타가 훌륭한 성인이 되기를, 히지카타는 자신이 긴파치 옆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어른이 되기를.


"...그래서 유학 가기로 했어요."


졸업식 전날, 히지카타가 옥상으로 불러서 긴파치한테 그리 통보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스펙 쌓아서 긴파치보다 돈 많이 벌어 노후 준비하겠다며 웃으면서 말했다. 유학은 히지카타의 목표였기에 긴파치는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아서 안심했다. 제자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잘 됐네, 히지카타군. 그런데 왜 그걸 옥상에서 말하는 거야? 날씨 춥다고."
"그거야..."


옥상을 빙 둘러보던 히지카타가 말했다.


"선생님, 여기서 담배 피우잖아요. 그리고 여기에 계속 남아있을 거고. 이참에 끊어봐요."


히지카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졸업하고 떠나면 긴파치가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자신과의 기억을 회상할 것을. 옥상에서 도시락 까먹으며 이야기도 했지만 긴파치가 유일하게 담배 피우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추억에 잠겨 씁쓸해져서 긴파치가 더 피울지도 모른다. 이상한 위로. 히지카타의 마음에 긴파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럴 걱정 없어, 히지카타군. 긴파치는 옥상에 올라와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교무실에서 히지카타를 바라보기도 했지만, 창문이 작아 역시 여기서 보는 게 좋았다. 하늘 위는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교실에서 히지카타를 떠올리는 것도 좋지만 옥상에서 비행기를 바라보며 히지카타를 기다리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