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타카히지] 무제

- memory - 2017. 3. 15. 23:05
*진선조 해체 이후 멋대로 망상편
*신스히지




빈틈없는 강한 녀석이 무너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특히 남들 앞에서는 힘든 티를 전혀 나타내지 않는 녀석, 이 히지카타 토시로라는 진선조 부장은.


* * * *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네놈들도 별 수 없군. 주인이 사라졌다고 떠돌이 개 신세가 되다니 말이야."


등 뒤에서 들리는 낮은 목소리와 함께 비웃는 소리가 히지카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자신과 같은 누군가를 죽인 자만이 나오는, 아니 그것보다 더한 짙은 살의와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그 차가운 목소리는 막혀진 진선조 둔영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던, 옛 추억을 그리는 공상 속에서 히지카타의 정신을 잔인한 현실로 끌고 오기에 충분했다. 이내 황급히 칼집에 들어있는 손잡이를 잡은 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서 히지카타는 몸을 돌렸고 예상도 못한 인물의 모습에 놀란 것도 잠시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지금 네 녀석 상대할 기분 아니다. 썩 꺼져."
"그렇겠지. 주인이 없는데 마구 날뛰면 후에 주인이 화내지 않겠어?"
"이 자식이...!!"


아까는 죽은 눈으로 자신의 집을 바라보더니 역시 사냥견은 사냥견인가. 자신의 기대에 맞춰서 나와주는 히지카타의 모습에 타카스기는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며 허리에 찬 검을 바로잡았다.  검을 꺼내면서 달려드리라. 타카스기는 그리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그 예상을 깨버렸다. 검의 손잡이를 분명히 쥐고 있었으나 꺼내지 않고 분노로 떨기만 할 뿐이었다. 한동안 그 자세로 그렇게 노려보더니 결국 아무 행동도 못한 채 그대로 뒤돌고는 걸음을 옮기는 게 아닌가.


"시시한 녀석."
"...네 녀석은 콘도씨를 구하면 그다음이다. 기대해도 좋을 거다."


꼴도 보기 싫다는 듯이 히지카타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 말을 남긴 채 완전히 자리를 떠버렸다. 자신과의 예상과는 달리 김빠지는 히지카타의 반응에 타카스기는 어이없다는 듯이 잠시 코웃음을 치곤 히지카타가 서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모를 무언가의 액체가 떨어진 몇 방울의 자국들. 아까의 그 노려보던 눈빛에 담긴 감정을 타카스기는 읽었기에 이 흙바닥에 물방울처럼 젖은 자국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약함에 대한 질책과 분노, 슬픔 등의 패배감이 섞인 것이겠지.


"...기분 나빠졌어."


분노로 날뛰는 들개의 모습을 기대했거늘, 무리가 흩어져서 축 처진 개의 모습이라니. 한순간에 초라해진 그의 모습에 타카스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원한 네 모습은 이런 게 아니야. 날 죽이겠다고 날뛰는 네 모습을 기대했다고. 문득 히지카타의 모습이 얼핏 자신의 모습과 겹쳐진다는 생각이 들자 왼쪽 눈에 통증이 느껴졌다. 눈앞에서 지키고자 했던 사람의 목이 떨어진 그날이 아른거린다. 녀석도 어릴 적의 자신처럼 지키고자 했던 것을 잃어버리면 어찌 될까. 자신처럼 이리 핀트가 나갈 것인가, 아니면 폐인이 돼서 어딘가로 사라질 것인가. 어느 쪽이 되건 녀석은 지금의 좌절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무리가 해체된 지금에도, 만약 그 콘도 이사오의 목이 베어져도.

그 좌절감이 그를 성장시킬 수도 있으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녀석의 무너진 모습을 봐도 그리 유쾌하진 않아. 역시 녀석은 진선조 부장인 강인한 모습이 낫다. 사나운 짐승을 찾는 제 모습이 마치 카무이를 닮아가는 모습에 실소를 한 번, 자신의 어릴 적이 떠오르게 만든 동질감 때문인지, 적대감이라도 좋으니 그의 머릿속을 자신으로 채우고 싶은 지 타카스기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힘 빠진 녀석보다 전처럼 날뛰는 녀석과 칼을 맞대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귀찮은 적이라도 시시하게 누군가한테 지배 당해서 숨죽이느라 쉬쉬하는 세상보다 그 세상과 맞서며 날뛰는 녀석들이 있는 편이 재미있으니까.

타카스기는 제 핸드폰을 꺼내서 자신의 동맹자한테 간단하게 문자를 보내고 닫아버렸다. 수신자는 미미와리구미의 국장 사사키 이사부로.


'떠돌이 개들을 거둬보는 게 어떤가? 아주 재밌게해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