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타카스기] 미련
- memory -
2017. 4. 7. 13:35
*양이전쟁 당시의 과거 신스케 & 현재 막부한테 쫓기고 있는 현재 신스케
수백 번 그 시절을 회상하고, 수천 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자신은 이 벼랑 끝까지 몰려있지 않을 거라고, 적어도 옛날에는 친우였던 자들과는 흩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이 세상이 끝난 날을 결코 잊지 못 한다. 아니, 잊을 수 없다. 수많은 귀병대 대원들이 숙청 당하여 강변에 목이 걸린 그 끔찍한 광경을. 나라를 위해서 칼을 빼든 자들이 나라한테 배신 당하고 목숨을 빼앗겼다. 만약 과거의 내가 자신의 현실, 미래를 안다면 이 현실이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그때의 자신의 나약함을 곱씹으며 그때 당시에 만들어진 마음속의 칼날을 갈았다.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잊는 순간 그때의 나약한 자신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리라.
*
자신이 그동안 과거를 잊고 살아왔던 적이 있던가. 아니, 적막 속의 밤에는 구석에 박아두었던 감정들이 드러나는 시기이다. 드러내는 순간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라 그것을 숨기느라, 숨길수록 더욱 그때의 그 시절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아지랑이는 그 과거가 어제 일이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잊으면 안 돼, 왜냐하면 넌 패배자니까. 다시 패배하고 싶어? 우리들의 복수를 해줘야지.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향기가 방 안을 감돌았고, 방 안에는 목이 없는 시체들이 뒹굴고 있다. 자신은 늘 그런 환청이 들리고 그것이 실제로 없는 환상이 보여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것은 무엇일까? 잊지 말라고 죽은 동료들이 보내준 선물인가, 아니면 자신의 환상일까. 타카스기 신스케는 입에 물고 있던 곰방대 연기를 훅 뱉으며 다시 곰방대를 물고 그 씁쓸함을 입안에 즐기면서 눈에 보이는, 아니 정확히는 쓰러진 남자를 경계가 그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쓰러진 남자는 과거 속의 자신이었다.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니 속이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자기 자신과 같았던 긴토키가 아닌 과거 속의 자신한테로 칼날이 향했다. 그 대상이 없어서 비슷했던 녀석으로 돌렸는데 그 대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자신과 쏙 닮은 남자는 과로인지 다친 기색도 없어 보이건만 정신을 차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린 자신을 분장한 녀석일까, 아니면 환상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필요 없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죽이고 싶어졌으니까. 괜한 화풀이이며, 자신이 부숴야 할 대상은 자신이 아닌 나락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무력함이 자기혐오로 커져 나락에 대한 분노보다는 자신에 대한 원망이 더욱 깊어진 상태라 그것에 대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옆구리에 찬 검을 검집에서 뽑아들려고 할 때 남자의 몸이 뒤척거렸고 검을 잡은 타카스기의 동작이 멈추었다. 자신을 죽인다면 그 과거는 어떻게 될까? 이 녀석을 죽이면 지금의 나는? 만약 죽는다면 그보다 더한 결과가 오지 않을까? 미래는 수 가지 길로 이어진다고 하니 나는 그 실패의 길들의 하나가 아닐까 등 수만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타카스기는 복잡한 머릿속을 털어내려는 듯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만약 정말로 과거의 자신이라면, 지금 이 미래를 알게 된다면 좌절하고 포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을 다 안다고 해도 전력의 차이가 확실하게 나서 이기는 것에 대한 기대는 없다. ..역시 묻는다면 회피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겠지. 아니, 차라리 약을 먹여서 못 일어나게 계속 재워버릴까. 만약 일어난다면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눈앞의 남자가 환상이길 바라며 그의 몸을 들어 올리자 쓰러져있는 과거의 자신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확실한 무게감이 손에서 느껴졌다.
*
타카스기 신스케는 아까부터 한참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였다. 다만 몸이 심해에 점점 잠기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져만 간다. 눈꺼풀은 누가 접착제라도 바른 것 마냥 뜨기가 힘들었다. 녀석들이 나 잔다고 장난이라도 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감돌았다. 하지만 바깥에서 자고 있던 터라 바람이 느껴져야 하거늘 그것조차 느껴지지가 않았다. 몸이 엎어진 것 같으니 땅의 촉감이 느껴져야 하건만 땅의 촉감 대신 나무판자인 듯 매끈한 곳에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렇다면 잠자고 있는 사이에 천인들한테 납치라도 당한 것일까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구속당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답답한 심정에 입을 열어 목소리라도 내고 싶건만 몸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긴토키일까, 즈라일까, 타츠마일까? 녀석들인 줄 알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지만 녀석들은 아니었다. 녀석들과는 다르게 발걸음의 주인은 한층 더 가벼웠고 짙은 살기를 풍기며 자신한테 오고 있었고 자신의 앞에 멈춰 섰다. 자신한테 이런 살기를 풍기고 있다면 적이 틀림없다. 발걸음의 주인공이 먼저 기습하기 전에 칼을 꺼내들어야 되는데 몸은 여전히 말을 들을 생각을 안 한다. 눈이 안 떠져도 좋으니까 제발 움직여라.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방이 칼을 잡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더욱 마음이 다급해졌다. 열심히 움직이기를 시도한 것과는 허무하게 몸은 잠꼬대하는 것처럼 뒤척여질 뿐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에 몸에서 뿜는 살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무엇 때문인 건지에 대한 의아함도 잠시 몸이 들려 허공에 떴다. 허리와 무릎 뒤쪽을 받쳐서 드는 든든한 팔.
상대방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대자 놀랍게도 몸을 억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지고, 그 틈에 실눈을 떠서 보니 자신을 들고 있는, 눈앞의 상대방은 왼쪽 눈에 붕대를 감고 회상에 잠긴 듯이 넋을 놓고 공허하면서 슬픈 녹안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이 수척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가진 자신의 모습이었다.
*
"결심했어, 난 우주로 가겠어."
익숙한 목소리가 정신이 멍한 타카스기를 일깨웠다. 타츠마의 목소리인가? 타카스기는 위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잠이 덜 깬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붕 위에 누워있는 긴토키와 대화중인지 타츠마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이러는 동안에도 천인들은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어.밀려드는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법이야."
녀석의 말은 지금 우리가 하는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걸까? 평소 같으면 울컥하겠지만 정신이 졸려서일까, 아니면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서일까. 타카스기는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아서 그의 말을 몰래 집중해서 귀를 기울었다.
"이런 전쟁은 동료들만 헛되이 죽음으로 내몰 뿐이지. 난 더이상 동료들이 죽는 꼴은 보기가 싫어."
녀석과는 잘 통하면서도 어긋나는 것 같다. 동료들이 죽는 꼴 보기가 싫은 건 타카스기 자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만두기에는 너무 멀리 왔으며, 그동안 죽은 동료들의 희생은 무의미하게 된다. 문득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한 꿈이 머릿 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안아들고 지친 모습의 공허한 눈빛을 가지고 넋을 놓은 자신의 미래인 것 같은 자신과 닮은 자. ...타츠마, 네 녀석들과 나는 이 전쟁이 끝난다면 흩어질 거다. 왜냐하면...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늘이여, 이 자식 대가리에 운석 하나만 쳐박아 주쇼!"
우린 목표는 같지만 목적은 너무 다르거든. 큰 목소리로 웃으며 긴토키한테 살벌한 저주를 퍼붓는 타츠마의 말을 마지막으로 타카스기는 자신을 덮쳐오는 수마에 정신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눈을 감았다.
*
마법처럼 순식간에 과거의 타카스기는 사라졌다. 그 과거의 자신을 안아서 들고 있던, 하지만 이제는 허전한 제 양손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타카스기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과거를 지우고 싶은가, 과거에 대한 미련이 있는가?
수백 번 그 시절을 회상하고, 수천 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자신은 이 벼랑 끝까지 몰려있지 않을 거라고, 적어도 옛날에는 친우였던 자들과는 흩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이 세상이 끝난 날을 결코 잊지 못 한다. 아니, 잊을 수 없다. 수많은 귀병대 대원들이 숙청 당하여 강변에 목이 걸린 그 끔찍한 광경을. 나라를 위해서 칼을 빼든 자들이 나라한테 배신 당하고 목숨을 빼앗겼다. 만약 과거의 내가 자신의 현실, 미래를 안다면 이 현실이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그때의 자신의 나약함을 곱씹으며 그때 당시에 만들어진 마음속의 칼날을 갈았다.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잊는 순간 그때의 나약한 자신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리라.
*
자신이 그동안 과거를 잊고 살아왔던 적이 있던가. 아니, 적막 속의 밤에는 구석에 박아두었던 감정들이 드러나는 시기이다. 드러내는 순간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라 그것을 숨기느라, 숨길수록 더욱 그때의 그 시절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아지랑이는 그 과거가 어제 일이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잊으면 안 돼, 왜냐하면 넌 패배자니까. 다시 패배하고 싶어? 우리들의 복수를 해줘야지.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향기가 방 안을 감돌았고, 방 안에는 목이 없는 시체들이 뒹굴고 있다. 자신은 늘 그런 환청이 들리고 그것이 실제로 없는 환상이 보여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것은 무엇일까? 잊지 말라고 죽은 동료들이 보내준 선물인가, 아니면 자신의 환상일까. 타카스기 신스케는 입에 물고 있던 곰방대 연기를 훅 뱉으며 다시 곰방대를 물고 그 씁쓸함을 입안에 즐기면서 눈에 보이는, 아니 정확히는 쓰러진 남자를 경계가 그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쓰러진 남자는 과거 속의 자신이었다.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니 속이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자기 자신과 같았던 긴토키가 아닌 과거 속의 자신한테로 칼날이 향했다. 그 대상이 없어서 비슷했던 녀석으로 돌렸는데 그 대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자신과 쏙 닮은 남자는 과로인지 다친 기색도 없어 보이건만 정신을 차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린 자신을 분장한 녀석일까, 아니면 환상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필요 없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죽이고 싶어졌으니까. 괜한 화풀이이며, 자신이 부숴야 할 대상은 자신이 아닌 나락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무력함이 자기혐오로 커져 나락에 대한 분노보다는 자신에 대한 원망이 더욱 깊어진 상태라 그것에 대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옆구리에 찬 검을 검집에서 뽑아들려고 할 때 남자의 몸이 뒤척거렸고 검을 잡은 타카스기의 동작이 멈추었다. 자신을 죽인다면 그 과거는 어떻게 될까? 이 녀석을 죽이면 지금의 나는? 만약 죽는다면 그보다 더한 결과가 오지 않을까? 미래는 수 가지 길로 이어진다고 하니 나는 그 실패의 길들의 하나가 아닐까 등 수만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타카스기는 복잡한 머릿속을 털어내려는 듯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만약 정말로 과거의 자신이라면, 지금 이 미래를 알게 된다면 좌절하고 포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을 다 안다고 해도 전력의 차이가 확실하게 나서 이기는 것에 대한 기대는 없다. ..역시 묻는다면 회피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겠지. 아니, 차라리 약을 먹여서 못 일어나게 계속 재워버릴까. 만약 일어난다면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눈앞의 남자가 환상이길 바라며 그의 몸을 들어 올리자 쓰러져있는 과거의 자신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확실한 무게감이 손에서 느껴졌다.
*
타카스기 신스케는 아까부터 한참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였다. 다만 몸이 심해에 점점 잠기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져만 간다. 눈꺼풀은 누가 접착제라도 바른 것 마냥 뜨기가 힘들었다. 녀석들이 나 잔다고 장난이라도 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감돌았다. 하지만 바깥에서 자고 있던 터라 바람이 느껴져야 하거늘 그것조차 느껴지지가 않았다. 몸이 엎어진 것 같으니 땅의 촉감이 느껴져야 하건만 땅의 촉감 대신 나무판자인 듯 매끈한 곳에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렇다면 잠자고 있는 사이에 천인들한테 납치라도 당한 것일까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구속당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답답한 심정에 입을 열어 목소리라도 내고 싶건만 몸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긴토키일까, 즈라일까, 타츠마일까? 녀석들인 줄 알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지만 녀석들은 아니었다. 녀석들과는 다르게 발걸음의 주인은 한층 더 가벼웠고 짙은 살기를 풍기며 자신한테 오고 있었고 자신의 앞에 멈춰 섰다. 자신한테 이런 살기를 풍기고 있다면 적이 틀림없다. 발걸음의 주인공이 먼저 기습하기 전에 칼을 꺼내들어야 되는데 몸은 여전히 말을 들을 생각을 안 한다. 눈이 안 떠져도 좋으니까 제발 움직여라.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방이 칼을 잡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더욱 마음이 다급해졌다. 열심히 움직이기를 시도한 것과는 허무하게 몸은 잠꼬대하는 것처럼 뒤척여질 뿐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에 몸에서 뿜는 살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무엇 때문인 건지에 대한 의아함도 잠시 몸이 들려 허공에 떴다. 허리와 무릎 뒤쪽을 받쳐서 드는 든든한 팔.
상대방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대자 놀랍게도 몸을 억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지고, 그 틈에 실눈을 떠서 보니 자신을 들고 있는, 눈앞의 상대방은 왼쪽 눈에 붕대를 감고 회상에 잠긴 듯이 넋을 놓고 공허하면서 슬픈 녹안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이 수척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가진 자신의 모습이었다.
*
"결심했어, 난 우주로 가겠어."
익숙한 목소리가 정신이 멍한 타카스기를 일깨웠다. 타츠마의 목소리인가? 타카스기는 위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잠이 덜 깬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붕 위에 누워있는 긴토키와 대화중인지 타츠마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이러는 동안에도 천인들은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어.밀려드는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법이야."
녀석의 말은 지금 우리가 하는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걸까? 평소 같으면 울컥하겠지만 정신이 졸려서일까, 아니면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서일까. 타카스기는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아서 그의 말을 몰래 집중해서 귀를 기울었다.
"이런 전쟁은 동료들만 헛되이 죽음으로 내몰 뿐이지. 난 더이상 동료들이 죽는 꼴은 보기가 싫어."
녀석과는 잘 통하면서도 어긋나는 것 같다. 동료들이 죽는 꼴 보기가 싫은 건 타카스기 자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만두기에는 너무 멀리 왔으며, 그동안 죽은 동료들의 희생은 무의미하게 된다. 문득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한 꿈이 머릿 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안아들고 지친 모습의 공허한 눈빛을 가지고 넋을 놓은 자신의 미래인 것 같은 자신과 닮은 자. ...타츠마, 네 녀석들과 나는 이 전쟁이 끝난다면 흩어질 거다. 왜냐하면...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늘이여, 이 자식 대가리에 운석 하나만 쳐박아 주쇼!"
우린 목표는 같지만 목적은 너무 다르거든. 큰 목소리로 웃으며 긴토키한테 살벌한 저주를 퍼붓는 타츠마의 말을 마지막으로 타카스기는 자신을 덮쳐오는 수마에 정신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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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처럼 순식간에 과거의 타카스기는 사라졌다. 그 과거의 자신을 안아서 들고 있던, 하지만 이제는 허전한 제 양손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타카스기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과거를 지우고 싶은가, 과거에 대한 미련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