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은혼

[카무타카] 핑계

- memory - 2017. 4. 9. 17:43
 



요 며칠 타카스기의 기분은 바닥으로 치고 그의  부하들은 행동을 조심하느라, 숨 막히는 분위기 때문에 피곤할 정도였다. 타카스기의 기분이 다운된 이유는 다름 아닌 카무이 덕분이다. 카무이는 귀병대를 자주 들락거렸는데 무슨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다. "지구인의 밥은 맛있다."라는 다소 황당한 이유로 늘 찾아와 밥을 먹었는데 밥만 먹고 가면 좋으련만 몇 시간 자기 집 안방처럼 눌러앉았다가 떠났다.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걸 편안하게 여기던 그라 드물게도 아닌 자주 방문하는 카무이의 방문은 그다지 달갑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귀병대 식량을 다 바닥낼 셈이냐라는 타카스기의 말에 그만 찾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카무이는 자신이 먹은 것의 음식재료를 2배로 가져와서는 음식재료를 2배로 줄 테니 자신의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해왔다. 돌려 말하는 것을 이해 못 한 것인가. 타카스기가 한숨 쉬는 걸 보며 아부토는 그 몰래 동정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타카스기가 민폐다라고 말했으나 카무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하지만 신스케랑 안 먹으면 맛이 안 난다는 대답으로 타카스기는 말하기를 그만뒀다. 어떤 식으로 말하든 그는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는 어린애 같은 면이 있어서 상대하면 더 지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리라.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와 자신의 공간에서 멀뚱히 앉아있는 카무이를 타카스기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로 갸웃였다. 타카스기는 대답 대신에 입에 문 곰방대를 손으로 잡아떼며 연기를 뱉었다. 계속 무시할수록 더욱 말이 많아지는 터라 말상대가 되어야 한다. 입에서 나오는 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걸 가만히 바라보던 타카스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넌 네 위치를 자각하고는 있는 건가?"

"응? 강하기만 하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아?"


어쩐지 그의 옆에 늘 같이 다니는 부하가 그를 강가에 내놓은 어린애를 데리고 다니는 것처럼 하루라도 떨어지는 날이 없고, 얼굴이 왜 그리 초췌한 지 알 것 같은 타카스기다. 그 녀석이 이 녀석이 해야 될 일이라던가, 골치 아픈 뒤치다꺼리를 다 하는 것이겠지.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귀병대가 아니라 하루사메다. 네 책임을 지키고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라."

"신스케도 아부토 같은 소리 하네. 아부토가 "동맹이라지만 예의 좀 지켜라." "제발 자리를 지켜줘!" 라고 잔소리 퍼붓기는 하지만 내가 잠깐 자리 비웠다고 무슨 일 생기면 내가 그 녀석들을 처리할 거고, 서로 간의 교류가 있어야 동맹이 더욱 다져지지 않겠어?"

"...넌 그런 의미가 아닌 단순히 심심해서 오는 것이지 않은가."

"어라, 들킨 거야? 하지만 말이야."


카무이가 빙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창가에 앉아서 가만히 곰방대를 피우는 타카스기한테 다가갔다. 평소의 그 가벼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그의 몸에서 싸움할 때 풍기는 짙은 살기가 어렴풋이 느껴지자 달을 바라보며 곰방대를 입으로 가져가려던 손이 허공에 멈추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는 카무이의 태도에 달을 보던 시선을 돌리자 바로 앞에 카무이의 얼굴이 보이자 타카스기는 움찔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카무이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더니 이내 웃는 얼굴로 숙였던 허리를 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 걱정 안 해도 신스케가 말하는 것들은 지키고 있으니까 걱정 마."

"걱정하지 않았어. "

"하지만 지키고 싶은 건 여기에 있는걸."
"허-?"

"바로 여기."


뭘 말하는지 짐작도 안 되는지라 타카스기가 절로 인상 구기는 것을 본 카무이는 왠지 더욱 웃어 보이더니 타카스기의 턱을 잡아올려 그대로 입을 맞췄다. 예상도 못 한 상황이라 타카스기는 당황한 나머지 굳어버려서 손에 든 곰방대를 떨어뜨렸고 카무이는 입을 다시며 물러났다.


"신스케는 강해서 지킬 필요 없기는 하지만."

"너..."

"내가 지키고 지켜야 할 것이 하루사메지만 동맹도 중요하잖아? 그러니까 나는 내 일을 수행하는 거야. 이제 이 이야기는 끝이지?"


타카스기는 무어라 항의하려고 하였으니 카무이는 몸을 돌려 인사만 하고 그 공간에서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카무이가 나간 문을 인상 찌푸린 채 바라보던 타카스기는 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카무이의 저 행동이 장난인지, 진심인 건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나갈 때 조금 빨개진 귀를 보자니 진심인 것 같기도 하다.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쓰다듬으며 아까의 일을 다시 되새겨보았다. 기분 나쁜 게 아닌 묘한 감정이 드는 것이 그를 귀찮아하면서 강경하게 그를 쫓아내지 못 한 것이 그와 같은 마음 일지도 모르리라.


+


"아, 이제야 나온...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얼굴이 빨개진 거야?"

"...시끄러워, 아부토. 잔소리해도 내일도 올 거니까."


너무 와서 저 사무라이 총독이 화라도 낸 건가? 방에서 무슨 일인지 알 길이 없는 아부토는 어깨를 으슥이며 카무이의 뒤를 따라갔다. 후에 카무이가 신스케를 보려고 자리를 비웠을 때 반사이한테 그 소식을 듣고 미쳤다고 날뛰었다고 전해진다.

'은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카히지] 취중진담  (0) 2017.07.20
[타카히지] 타카스기 신스케는 죽었다  (0) 2017.07.05
[타카스기] 미련  (0) 2017.04.07
[히지타카] 잘못된 만남  (0) 2017.03.20
[타카히지] 무제  (0) 2017.03.15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