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히지른 전력 19회 - 눈물
※미츠바 사후의 이야기
소나기일까, 하늘에서 굵은 비가 순식간에 쏟아졌다. 비는 세차게 지면을 두들기며 그 충격으로 흩어져 물방울을 쏟아냈다. 담천 아래, 검은 제복을 입은 진선조의 부장 히지카타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멍하니 어느 한 곳만을 바라보았다. 히지카타의 앞에 누군가의 묘지가 있었다. 묘지의 주인공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인물이었는지 국화 외에도 다양한 꽃들이 놓여있었다. 묘지에 새겨진 이름은 "오키타 미츠바 " 그가 한때 사랑했었던 사람의 이름이다.
"이렇게 맞고 있으면 감기 걸리는데.."
죽은 사람이라 병에 걸릴 리가 없다. 그런데도 히지카타는 미츠바가 살아있는 것처럼 그리 말했다. 비로 젖기 시작하는 묘지를 히지카타는 소중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대리석이라 차가운 느낌이 담천으로 내리는 비 덕분에 더욱 어둡고 추운 느낌이 강해졌다. 더 추워지면 안 되지. 히지카타는 그리 중얼거리며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을 묘지에 씌웠다. 빗방울이 히지카타의 전신을 때렸다.
히지카타의 뒤로 우산을 씌우려는 히지카타를 말리려고 누군가가 손을 뻗었다가 허무하게 그의 팔을 통과하며 지나갔다. 그 하얀 손이 히지카타의 팔을 통과하자 느껴지는 오한에 히지카타는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다. 하지만 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미츠바인가? 아니, 미츠바가 올 리가 없잖아. 내가 그렇게 매정하게 떠났는데 나를 보러 올 리가 없어. 히지카타는 다시 묘지를 바라봤다.
"토시로씨, 돌아가세요. 날이 추워서 감기 걸려요."
아련한 목소리가 히지카타의 뒤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히지카타는 그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 돌아보지 않았다. 바위처럼 우두커니 그 자리를 지키는 히지카타를 바라보며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한테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히지카타를 돌아가게 할 방법이 없다. 묘지에 새겨진 이름의 주인공인 "미츠바"의 눈에서 위에서 내려지는 소나기처럼 눈물이 나왔다.
*
미츠바가 죽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미츠바가 죽은 후 미츠바의 혼령은 자신이 죽은 후와 장례식, 지금까지 진선조 곁에 머물면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소고가 넋 나간 사람처럼 하루 종일 기운이 없어 미츠바를 애타게 만들었다. 다행히 콘도와 히지카타가 그 곁을 지키면서 소고를 챙겨준 덕분에 장례식이 끝난 후 소고는 기운을 차리고 다시 열심히(?) 히지카타를 괴롭혔다.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히지카타는 미츠바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울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들 앞에서는 무표정을, 그 뒤에서 울었을 것이 뻔하다. 감정 표출을 제대로 못 하고 꾹꾹 참은 탓에 다들 잘 지내는 것과는 반대로 히지카타의 정신이 쇠약해져갔다. 히지카타의 자존심 때문에 소고는 알면서도 외면하며 평소처럼 굴었다. 특히 히지카타가 한눈팔면 더욱 짓궂게 괴롭혔다.
히지카타는 낮에는 소고와 같이 붙어 다니고 밤에는 업무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일이 많은 건지 서류를 쓰다가도 도중에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저러다 감기 걸릴 텐데. 옆에서 지켜보던 미츠바는 덮을 것을 히지카타의 등에 덮어주고 싶지만 육체가 없어 그리할 수 없어 속으로 발만 동동 굴렸다. 깨워보려고 문이나 바닥을 손으로 노크해서 소리라도 내볼까 했지만 히지카타가 곤히 자는 탓에 미츠바는 그 옆에 앉아서 구경했다.
"미츠바..."
닿지 않지만 미츠바가 히지카타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히지카타가 잠긴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미츠바가 놀라서 동작을 멈추고 히지카타를 바라보니 단순한 잠꼬대였다. 꿈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이름을 불러주다니, 미츠바는 기쁘면서도 동시에 쓸쓸해졌다.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일은 좋지만 죽은 사람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자신이나 상대방한테도 괴로운 일이다.
미츠바가 상대방의 꿈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위의 이유 때문이었다. 죽은 상대방을 추억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닌 괴로워할 정도로 그리워하는 것은 못 보겠다. 잊히는 것은 무섭지만 상대방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전에 가부키초로 올라가는 그들을 배웅하는 것처럼 미츠바는 그 등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죽어서 히지카타의 발목을 잡게 된 것 같은 죄책감이 미츠바를 구속하고 있었다. 잠깐만 보고 성불한다는 것이 괴로워하는 히지카타를 보니 미츠바는 성불할 수가 없었다.
미츠바의 죄책감을 막기 위한 것일까. 항상 히지카타를 꼴 보기 싫어하던 소고가 히지카타의 방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책상 위에 엎어져서 자는 히지카타와 잠꼬대로 어지른 건지 흩어진 서류뭉치를 보며 소고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흘끗였다. 멍청한 히지카타. 그리 중얼거리며 퉁명스러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소고는 어질러진 서류를 정리했다. 혹시나 다시 팔로 쳐서 엎지를지도 몰라 근처 탁자에 서류 뭉치를 올리고는 벽장의 이불을 꺼내 히지카타를 덮어주기까지.
"소쨩..."
히지카타를 마구 괴롭히는 소고라도 그가 걱정됐나 보다. 소고는 방에서 나갈 생각을 안 하고 벽장에 등을 대고 앉고는 히지카타의 등을 바라봤다. 평소의 그 기분 나쁘던 뒷모습이 오늘따라 약해 보여서 괜스레 짜증이 났다. 평상시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해도 늘 옆에 붙어 다니는 소고는 알 수 있다. 미츠바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가 점점 망가지고 있는 것을. 무엇보다 소고를 챙기려 소고한테 제 속마음을 더욱 숨기려고 한다는 게 소고는 못마땅했다.
"짜증나."
강한 척하려고 하는 저 모습이, 자신이 저 원수를 챙기는 것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안 든다. 자신이 왜 망할 히지카타를 챙기고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미츠바가 좋아한 남자라서 그런 걸까, 콘도 씨가 아껴서 그런 걸까. 마음에 안 들어서 확 쥐어박고 싶은데 저 엎드려서 지쳐 보이는 히지카타는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힘이 없는 히지카타를 죽이는 건 쉽지만 자신의 속이 개운 할 것 같지 않다.
*
'...라고 해도 미워하기가 힘들단 말이지.'
미츠바의 묘지에 우산을 씌우고 자신은 비 맞는 히지카타를 보곤 소고는 혀를 찼다. 히지카타 저주하는 법을 찾다가 우연히 본 것이 떠올랐다. 염원이 상대방의 넋을 붙잡을 수 있다고. 히지카타는 묘지에서 청승을 떨고 있으니 마음 약한 누님이 성불할 수 있을까? 아무한테 어디 간다는 연락 없이 와 히지카타의 자존심은 구백번째 치고 미츠바가 보는 앞이다. 그러니 우울한 모습보다는 밝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
"로켓 펀치 - ! !"
"컥-?!"
소고가 선택한 것은 위로 대신 히지카타한테 평소 하던 대로 엿 먹이기로 했다. 이번에는 넋 놓고 있었는지 히지카타는 피하지 못 하고 그대로 소고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제대로 주먹 먹인 건 좋지만 역시 영 시원치 않아. 소고는 넘어진 히지카타한테 태평스레 인사 건넸다. 누구한테도 연락 안 하고 온 처지라 히지카타는 놀랐지만 침울한 것을 들키기 싫어 평소처럼 화냈다.
"소고, 너 인마!"
"땡땡이 치다니 시말서 써라, 히지카타야."
"네가 할 말이냐!?"
누가 누구한테 땡땡이라는 거야, 저 땡땡이 대장이. 히지카타는 투덜거리며 옷을 털어댔다. 비로 흠뻑 젖어 넘어진 부분이 흙으로 물들어 털어도 소용이 없지만 말이다. 옷이 몸에 들러붙어서 옷을 터는 것이 아닌 몸을 치는 것이랑 별다를 바 없었다. 그런 히지카타 옆으로 소고가 붙어 자신이 들고 있는 우산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녀석 왜 이래? 소고의 주먹에 히지카타는 잠시나마 지금 있는 곳이 미츠바의 묘지임을 잊었다.
"누님한테 인사 다 했죠?"
"아."
들켰다. 무어라 변명하려고 히지카타는 입을 열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이제 그만 누님 놔줘요, 누님 마음이 착해서 히지카타씨 때문에 못 가잖아요. 소고가 변명을 못 하게끔 말을 박았다. 그렇다면 미츠바가 꿈에서 소고한테 부탁한 걸까. 히지카타는 소고에게 어쩐지 더욱 죄책감이 느껴졌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 대신해서 더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고가 들고 온 검은 비닐봉지에서 타바스코를 잔뜩 뿌린 문어빵을 묘지 앞에 놔뒀다.
그래, 내년을 기약하며 다시 와야겠어. 미츠바한테 한심한 모습을 보였어. 히지카타는 그리 중얼거리며 등을 돌렸다. 어라, 치사하게 혼자 가는 겁니까? 소고의 말에 히지카타는 입꼬리를 올렸다. 남매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지. 소고가 대꾸했다. 콘도씨한테 네놈 찾는다고 말하고 나왔는데 혼자 가면 땡땡이친 거 들켜서 안 돼. 소고가 히지카타 옆으로 쫓아갔다. 무섭게 내렸던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쳐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츠바는 떠나가는 그들의 등을 바라봤다.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쓸쓸할 텐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시 앞만 바라보며 가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옆으로 최대한 늦게 오기를, 평안을 기원하면 된다. 이로써 이승에 대한 미련은 남지 않았다. 미련이 없어져 미츠바의 몸이 서서히 희미해져갔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지금 본 것과 같이 스스로 잘 나아갈 테니까. 묘지 위로 햇빛이 비쳤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지만 그들이 남긴 따스함이 그 자리에 남았다.
※미츠바 사후의 이야기
소나기일까, 하늘에서 굵은 비가 순식간에 쏟아졌다. 비는 세차게 지면을 두들기며 그 충격으로 흩어져 물방울을 쏟아냈다. 담천 아래, 검은 제복을 입은 진선조의 부장 히지카타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멍하니 어느 한 곳만을 바라보았다. 히지카타의 앞에 누군가의 묘지가 있었다. 묘지의 주인공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인물이었는지 국화 외에도 다양한 꽃들이 놓여있었다. 묘지에 새겨진 이름은 "오키타 미츠바 " 그가 한때 사랑했었던 사람의 이름이다.
"이렇게 맞고 있으면 감기 걸리는데.."
죽은 사람이라 병에 걸릴 리가 없다. 그런데도 히지카타는 미츠바가 살아있는 것처럼 그리 말했다. 비로 젖기 시작하는 묘지를 히지카타는 소중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대리석이라 차가운 느낌이 담천으로 내리는 비 덕분에 더욱 어둡고 추운 느낌이 강해졌다. 더 추워지면 안 되지. 히지카타는 그리 중얼거리며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을 묘지에 씌웠다. 빗방울이 히지카타의 전신을 때렸다.
히지카타의 뒤로 우산을 씌우려는 히지카타를 말리려고 누군가가 손을 뻗었다가 허무하게 그의 팔을 통과하며 지나갔다. 그 하얀 손이 히지카타의 팔을 통과하자 느껴지는 오한에 히지카타는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다. 하지만 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미츠바인가? 아니, 미츠바가 올 리가 없잖아. 내가 그렇게 매정하게 떠났는데 나를 보러 올 리가 없어. 히지카타는 다시 묘지를 바라봤다.
"토시로씨, 돌아가세요. 날이 추워서 감기 걸려요."
아련한 목소리가 히지카타의 뒤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히지카타는 그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 돌아보지 않았다. 바위처럼 우두커니 그 자리를 지키는 히지카타를 바라보며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한테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히지카타를 돌아가게 할 방법이 없다. 묘지에 새겨진 이름의 주인공인 "미츠바"의 눈에서 위에서 내려지는 소나기처럼 눈물이 나왔다.
*
미츠바가 죽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미츠바가 죽은 후 미츠바의 혼령은 자신이 죽은 후와 장례식, 지금까지 진선조 곁에 머물면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소고가 넋 나간 사람처럼 하루 종일 기운이 없어 미츠바를 애타게 만들었다. 다행히 콘도와 히지카타가 그 곁을 지키면서 소고를 챙겨준 덕분에 장례식이 끝난 후 소고는 기운을 차리고 다시 열심히(?) 히지카타를 괴롭혔다.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히지카타는 미츠바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울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들 앞에서는 무표정을, 그 뒤에서 울었을 것이 뻔하다. 감정 표출을 제대로 못 하고 꾹꾹 참은 탓에 다들 잘 지내는 것과는 반대로 히지카타의 정신이 쇠약해져갔다. 히지카타의 자존심 때문에 소고는 알면서도 외면하며 평소처럼 굴었다. 특히 히지카타가 한눈팔면 더욱 짓궂게 괴롭혔다.
히지카타는 낮에는 소고와 같이 붙어 다니고 밤에는 업무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일이 많은 건지 서류를 쓰다가도 도중에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저러다 감기 걸릴 텐데. 옆에서 지켜보던 미츠바는 덮을 것을 히지카타의 등에 덮어주고 싶지만 육체가 없어 그리할 수 없어 속으로 발만 동동 굴렸다. 깨워보려고 문이나 바닥을 손으로 노크해서 소리라도 내볼까 했지만 히지카타가 곤히 자는 탓에 미츠바는 그 옆에 앉아서 구경했다.
"미츠바..."
닿지 않지만 미츠바가 히지카타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히지카타가 잠긴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미츠바가 놀라서 동작을 멈추고 히지카타를 바라보니 단순한 잠꼬대였다. 꿈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이름을 불러주다니, 미츠바는 기쁘면서도 동시에 쓸쓸해졌다.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일은 좋지만 죽은 사람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자신이나 상대방한테도 괴로운 일이다.
미츠바가 상대방의 꿈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위의 이유 때문이었다. 죽은 상대방을 추억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닌 괴로워할 정도로 그리워하는 것은 못 보겠다. 잊히는 것은 무섭지만 상대방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전에 가부키초로 올라가는 그들을 배웅하는 것처럼 미츠바는 그 등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죽어서 히지카타의 발목을 잡게 된 것 같은 죄책감이 미츠바를 구속하고 있었다. 잠깐만 보고 성불한다는 것이 괴로워하는 히지카타를 보니 미츠바는 성불할 수가 없었다.
미츠바의 죄책감을 막기 위한 것일까. 항상 히지카타를 꼴 보기 싫어하던 소고가 히지카타의 방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책상 위에 엎어져서 자는 히지카타와 잠꼬대로 어지른 건지 흩어진 서류뭉치를 보며 소고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흘끗였다. 멍청한 히지카타. 그리 중얼거리며 퉁명스러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소고는 어질러진 서류를 정리했다. 혹시나 다시 팔로 쳐서 엎지를지도 몰라 근처 탁자에 서류 뭉치를 올리고는 벽장의 이불을 꺼내 히지카타를 덮어주기까지.
"소쨩..."
히지카타를 마구 괴롭히는 소고라도 그가 걱정됐나 보다. 소고는 방에서 나갈 생각을 안 하고 벽장에 등을 대고 앉고는 히지카타의 등을 바라봤다. 평소의 그 기분 나쁘던 뒷모습이 오늘따라 약해 보여서 괜스레 짜증이 났다. 평상시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해도 늘 옆에 붙어 다니는 소고는 알 수 있다. 미츠바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가 점점 망가지고 있는 것을. 무엇보다 소고를 챙기려 소고한테 제 속마음을 더욱 숨기려고 한다는 게 소고는 못마땅했다.
"짜증나."
강한 척하려고 하는 저 모습이, 자신이 저 원수를 챙기는 것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안 든다. 자신이 왜 망할 히지카타를 챙기고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미츠바가 좋아한 남자라서 그런 걸까, 콘도 씨가 아껴서 그런 걸까. 마음에 안 들어서 확 쥐어박고 싶은데 저 엎드려서 지쳐 보이는 히지카타는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힘이 없는 히지카타를 죽이는 건 쉽지만 자신의 속이 개운 할 것 같지 않다.
*
'...라고 해도 미워하기가 힘들단 말이지.'
미츠바의 묘지에 우산을 씌우고 자신은 비 맞는 히지카타를 보곤 소고는 혀를 찼다. 히지카타 저주하는 법을 찾다가 우연히 본 것이 떠올랐다. 염원이 상대방의 넋을 붙잡을 수 있다고. 히지카타는 묘지에서 청승을 떨고 있으니 마음 약한 누님이 성불할 수 있을까? 아무한테 어디 간다는 연락 없이 와 히지카타의 자존심은 구백번째 치고 미츠바가 보는 앞이다. 그러니 우울한 모습보다는 밝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
"로켓 펀치 - ! !"
"컥-?!"
소고가 선택한 것은 위로 대신 히지카타한테 평소 하던 대로 엿 먹이기로 했다. 이번에는 넋 놓고 있었는지 히지카타는 피하지 못 하고 그대로 소고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제대로 주먹 먹인 건 좋지만 역시 영 시원치 않아. 소고는 넘어진 히지카타한테 태평스레 인사 건넸다. 누구한테도 연락 안 하고 온 처지라 히지카타는 놀랐지만 침울한 것을 들키기 싫어 평소처럼 화냈다.
"소고, 너 인마!"
"땡땡이 치다니 시말서 써라, 히지카타야."
"네가 할 말이냐!?"
누가 누구한테 땡땡이라는 거야, 저 땡땡이 대장이. 히지카타는 투덜거리며 옷을 털어댔다. 비로 흠뻑 젖어 넘어진 부분이 흙으로 물들어 털어도 소용이 없지만 말이다. 옷이 몸에 들러붙어서 옷을 터는 것이 아닌 몸을 치는 것이랑 별다를 바 없었다. 그런 히지카타 옆으로 소고가 붙어 자신이 들고 있는 우산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녀석 왜 이래? 소고의 주먹에 히지카타는 잠시나마 지금 있는 곳이 미츠바의 묘지임을 잊었다.
"누님한테 인사 다 했죠?"
"아."
들켰다. 무어라 변명하려고 히지카타는 입을 열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이제 그만 누님 놔줘요, 누님 마음이 착해서 히지카타씨 때문에 못 가잖아요. 소고가 변명을 못 하게끔 말을 박았다. 그렇다면 미츠바가 꿈에서 소고한테 부탁한 걸까. 히지카타는 소고에게 어쩐지 더욱 죄책감이 느껴졌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 대신해서 더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고가 들고 온 검은 비닐봉지에서 타바스코를 잔뜩 뿌린 문어빵을 묘지 앞에 놔뒀다.
그래, 내년을 기약하며 다시 와야겠어. 미츠바한테 한심한 모습을 보였어. 히지카타는 그리 중얼거리며 등을 돌렸다. 어라, 치사하게 혼자 가는 겁니까? 소고의 말에 히지카타는 입꼬리를 올렸다. 남매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지. 소고가 대꾸했다. 콘도씨한테 네놈 찾는다고 말하고 나왔는데 혼자 가면 땡땡이친 거 들켜서 안 돼. 소고가 히지카타 옆으로 쫓아갔다. 무섭게 내렸던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쳐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츠바는 떠나가는 그들의 등을 바라봤다.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쓸쓸할 텐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시 앞만 바라보며 가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옆으로 최대한 늦게 오기를, 평안을 기원하면 된다. 이로써 이승에 대한 미련은 남지 않았다. 미련이 없어져 미츠바의 몸이 서서히 희미해져갔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지금 본 것과 같이 스스로 잘 나아갈 테니까. 묘지 위로 햇빛이 비쳤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지만 그들이 남긴 따스함이 그 자리에 남았다.
'은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타카] 고양이를 주웠다 (0) | 2018.02.27 |
---|---|
[긴히지/히지긴] 졸업 (0) | 2017.09.11 |
[타카히지] 취중진담 (0) | 2017.07.20 |
[타카히지] 타카스기 신스케는 죽었다 (0) | 2017.07.05 |
[카무타카] 핑계 (0) | 2017.04.09 |